영국 함선 내항과 통상 요구 사건

[노충기 목사의 사건으로 본 한국교회사]
영국 군함, 1816년 충청도 마량진 앞 갈곶 정착
당시 마량진 첨사 조대복에 성경 선물로 전해 줘

기독타임스 | 기사입력 2022/01/26 [19:52]

영국 함선 내항과 통상 요구 사건

[노충기 목사의 사건으로 본 한국교회사]
영국 군함, 1816년 충청도 마량진 앞 갈곶 정착
당시 마량진 첨사 조대복에 성경 선물로 전해 줘

기독타임스 | 입력 : 2022/01/26 [19:52]

▲ 맥스웰 함장.     ©

 

12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있어났던 십자군 전쟁 이래 유럽 각국은 동양 진출에 주력하였고, 마르코 폴로(Marco Polo)의 “동방견문록(東方見聞錄)”이 발간된 이래 더욱 활기를 띠면서, 특히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고조되었다. 

그 중에 해양국가의 대표격인 영국이 이 일에 앞장섰고, 동인도회사(1600년 창설)의 설립 이래 더욱 더 활기를 띠었다.

1797년(정조 21), 영국 군함 프로비덴스(Providence) 호가 북태평양 해안탐험 항해 중 조선 동해안 원산만에 왔다가, 다시 남하하여 부산 동래(東萊) 앞바다에까지 와서 표착했던 일이 있었으나,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곧 물러갔기 때문에 충돌이나 마찰되는 일은 없었다.

그 후 두 번째 나타난 영국 군함은 1816년(순조 16) 9월 1일, 알세스트(Alceste) 호(함장 : 맥스웰 <Murry Maxwell> 대령)와, 리라(Lyra) 호(함장 : 바실 홀 <Basil Hall> 대령)라는 두 군함의 내항이다. 

이들은 영국 정부의 파송 중국 사절 아머스트(Amherst) 경을 호위하고 중국에 왔다가 조선 서해안 일대의 수심과 지형을 측정하여 바다 지도를 작성하려고 항해 중 서해안 충청도 마량진(馬梁津) 앞 갈곶(葛串 ; 현 충남 서천군 관내)에 정착하게 되었다.

때마침 사실을 문정하려고 배에 상선하였던 마량진 첨사(僉使 : 지방 주재 무관) 조대복(趙大福)을 상대로 하여 통상을 요구하였다. 

조대복은 배에 올라 선실을 두루 살피다가 선내 도서실에 들어가서 벽면 서가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을 보자 호기심에 가득찬 눈으로 이 책 저 책을 만져 보다가 유달리 크고 장정이 가장 아름답게 잘된 성경을 뽑아 이리저리 살펴보며 “훌륭하고 좋다”는 감탄의 말을 연발했다. 

첨사는 물론 그 책이 기독교의 성경인지는 알지 못했다. 이 광경을 눈치 챈 맥스웰 함장은 그 성경을 조대복 첨사에게 선물로 주었다.

조 첨사는 지금까지 거부적인 태도와 긴장한 얼굴로 살피다가 뜻밖에 귀중한 성경을 선물로 받자, 그는 감격하여 그 성경을 받을 때 한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것과 같이 정중하게 받았으며, 상부에서 하사하는 공문서를 받아 다루듯 신중하게 받았다. 

이 때 전해 준 성경은 간행 에딘버그 판(Edinburgh 板) 킹 제임스(King James)역 성경이었으며, 이 성경이야말로 한국에 처음 들어온 성경이었다.

마침 그 군함에는 그리피스(John Griffith)라는 종군 목사도 동승하였다. 그는 상조도(上鳥島)에 상륙했을 때 한국인들이 성황당(城隍當)에서 무속제사(巫俗祭祀) 하는 광경을 살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. 

그리고, 이 배에는 장범장(掌帆長) 로이(Roy)의 부인(Mrs. Roy)도 승선하고 있었는데, 이 여성은 한국인과 접촉한 최초의 서양 여성이었다고 본다.

맥스웰 함장은 여러 가지 선물을 주면서 통상을 요구했으나, 이 일은 끝내 거절 당했다. 그러나 무리한 박해는 받지 않고 조용히 물러가게 된 것만도 다행한 일이었다. 

여하튼 거금 180년 전에 기독교의 성경이 한국인의 손에 자연스럽게 넘겨졌었으니, 보이지 않는 복음의 싹이 나기 시작하였으리라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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